반응형

 

 

 

 

독자님의 중독과 구독에 위로를 받습니다.

 

 

 

 


 

 

예외는 없다.

누구에게나 글을 써야 하는 순간은 찾아온다.

 

나처럼

이런 짓까지는 안 했으면 하는 바람을 남겨본다.

 

당신의 에너지와 시간은 소중하니까

 

 

 


 

여긴 후 편 페이지입니다.

처음 오셨나요?
아래 사진을 눌러서 전 편을 볼 수 있어요.

 

 

 

 

전편으로 이동하기

 

 

그놈의 글쓰기. 앞으로 글 쓸일 없을 것 같죠? (하두리 사진)

글쓰기는 부끄럽다. 팬티 바람으로 다니는 것만큼이나. 사람들이 글쓰기를 꺼려하는 이유는 쓸 내용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오류가 드러나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팬티 바람

mental-coordinator.tistory.com

 

 

 

 

 

 


 

 

 

 

글쓰기는

 

낱말 그대로, 글 만 쓰는 게 아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펜만 잡으면 되는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을 쓰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점선 하나 없는 백지 위에

보이지도 않는 세상을 형상화시키는 고통을.

 

바람처럼 바뀌는, 감정의 방향과

거품처럼 언제 사라질까 불안한 기억들을 정돈한다.

 

거대한 내면세계를 글자로 바꾸는 것만큼

신비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매력적인 작업인 만큼

 

정신적인 중노동은 기본이다

 

 

 

 

글쓰기.

 

솔직히 말해서

 

버겁다.

 

 

 

윌리엄진서 글쓰기
'윌리엄 진서'가 존함이다. 김진서 할때 진서

 

 

 

 

글쓰기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이는 실제로 어렵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위 중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글쓰기다.

 

- 윌리엄 진서 -

 

 

 

 

 

 

골머리 겪는 같은 입장에서

필연적인 공감 주파수가 느껴진다.

공감이 진하면 위로가 된다.

 

진서 아저씨도 힘들었겠다.

 

 

 

 

 

 

 

 

 

' 청멘탈이가, 글에 신경 좀 썼네 '

 

 

 

 

 

(感) 좋은 구독자들은

과정의 노고를 짐작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글의 완성까지

들인 시간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블로그야, 블러드야


 

 

 

 

나에게는 오래전부터

혹처럼 붙어있던 놈이 있다.

 

 

 

 

지독한 완벽주의.

 

 

 

 

완벽주의는 따로 작성하겠다.

 

 

 

 

 

 

 

 

고민이 깊은 인간은

시간의 흐름을 망각한다.

 

 

 

 

하나의 단어 선택에

고민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

 

 

그러니 문장은 당연히 더하다.

 

 

 

한 문장을 붙잡고 싸우다 보면

1시간은 지나있을 때도 있다.

 

 

 

징그럽다.

 

 

 

책 제목도 아니고,

회사 슬로건은 더더욱 아니다.

 

이게,

 

자유가 보장된 블로그에서

쩔쩔매야 할 일인가

 

 

 

 

 

그다음 문장을 쓰기 위해 내려왔다.

 

단어 하나를 수십 번 고민한다.

수차례 바꿨으니 결정도 수십 번이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연애편지와 씨름하는 영화 주인공.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방 주변에는 온통 구겨진 편지 투성이.

 

좀비한테 뜯긴 피 투성이보다 훨씬 잔인했다.

 

 

 

 

 

 

여긴 카메라도, 관객도 없다.

 

스릴을 챙겨주는 좀비도 없다.

 

보이지도 않는 완벽주의에게 마음을 뜯긴다.

 

고독은 중력마저 잃게 한다.

 

 

 

 

 

 

 

 

 

 

 

그만해,

그만하라고

아무도 안 봐.

돈 되는 것도 아니잖아.

이 짓을 왜 하는 거야?

 

 

 

 

포기의식 이라는 놈 역시

완벽주의와 한패.

 

 

글을 쓰는 내내 멘탈을 공격한다.

 

 

체력은 금방 바닥난다.

잠시 커피 한잔으로 기분을 달래 본다.

 

이때에 휴식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

 

글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가시덩굴 속 휴식과 같다.

 

오히려 쉬는 게 더 불편해서

반도 마시지 못한 커피잔을 책상에 내려놓고,

얼른 다시 의자에 앉는다.

 

 

 

가시에 찔리면서 고통을 모른 척할 때면

기분에서 피가 흐르는 느낌이 선명해진다.

 

 

 

 

나, 피난다.

 

 

 

 

세상에..

 

 

 

 

혈서로 블로그를 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

 

 

 

 

 

 

168 = 7


 

 

 

누가 그런다.

 

 

 

본인은 아무리 오래 걸려도

글 하나 쓰는데 3시간이면 된다고.

 

 

난 왜 안돼.

 

 

 

30분만 안에 쓰는 사람들은 제트기세요?

 

 

 

 

오늘따라 글을 후딱 써버리는 사람들이 부럽다.

 

 

 

 

 

 

 

 

 

 

 

 

 

 

김직원 씨가 말하는 

"오늘 하루 종일 일했어" 는

실제로 24시간이 아니다.

 

 

바쁘거나 열심히 일했다는 뜻이다.

현실은 8시간이다. 

 

 

 

 

 

 

소요시간 공개를 질질 끌어 죄송한 마음이다. 

부끄럽거나 두려우면 시간을 끌기 마련이다.

 

선생님께, 줄을서 매 맞을 때,

먼저 맞는 게 싫어, 뒷줄로 이동했던 경험이 있다면

추억에서 너그러운 양해를 꺼내어 써주시길.

 

 

 

 

 

 

 

 

 

 

 

 

 

 

 

 

 

168시간

 

 

 

 

 

 

 

 

 

 

 

 

 

 

 

내가 글 하나 쓰는 시간이다.

 

 

7일이다.

 

 

 

 

 

 

 

 

 

 

 

이왕 깐김에, 더 창피하겠다.

 

 

 

 

조금 특별한 7일이다.

 

 

나의 글을 기다려주는 사람들에게

'7일' 이라고 말했더니

 

피식 웃으며 반응하기를

 

 

 

 

" 7일은 훨씬 넘지 "

 

 

 

 

 

 

 

 

"오늘 하루 종일 일했어"는 24시간

김직원 씨의 현실 시간은 8시간.

 

 

 

 

 

현실 시간으로 168시간

 

밥, 잠, 커피

의자에서 벗어난 공백을 제외하고

 

실제

글만 쓰는 쓰는 시간이라는 점.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의도적으로 이 시간을 알고 나서

엉뚱한 행동을 하게 되는데...

 

 

 

 

 

계산기 어플을 켰다.

 

 

 

 

 

 

' 168시간이라.. 요즘 최저시급이 얼마였더라 '

 

 

 

 

 

 

 

멘탈 : 최저시급이 왜 나와 ?

 

 

청 : 나.. 그만 써도 돼 ?

 

 

멘탈 : 그만 써 그럼

 

 

청 : ...

 

 

 

 

 

 

 

 

 

각자의 속마음은

모두에게 숨길 수 있다.

 

 

 

 

멘탈 빼고

 

 

 

 

 

 

 

 

멘탈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의식을 향해가는지 알고 있다.

 

 

 

 

 

 

숲 속에 갇히는 방법


 

 

 

 

 

 

점검은 좋다.

과하면 독이 된다.

 

 

나는 괜찮은데,

완벽놈은 항상 안괜찮탄다.

 

 

남들이 보니까 더 완벽하게 써내라고 한다.

타인의 비판보다 더 날카롭다.

제대로 안 쓰면 욕먹을 거라고 협박도 한다.

 

 

 

멘탈이 알려준 글의 목적을 잃고

자평의 기준이 높아진다.

 

 

 

 

지금 글을 쓰는 도중에도

 

이 글의 첫 문장으로 끌려간다.

 

또 시작이다.

 

읽고 읽고 또 읽는다.

 

수정하고 또 수정된다.

 

또다시 처음으로 간다.

 

맨 위로 끌려간다.

 

고쳐 쓴다.

 

내려오다가 또

 

글의 첫 부분으로 끌려간다.

 

수정한다.

 

언제 끝나.

 

어떻게 써내려 왔더라.

 

또 맨 처음으로 간다.

 

또 읽고

 

또 수정한다.

 

 

 

 

 

ㄴㅇㄹ매ㅏㅓㄴ호맫ㅈ홎ㄷ4ㅁㅎ5ㄱㄷㅎㄷ솧5소

 

 

 

 

 

다 써도 끝난 게 아니다.

 

 

 

 

음식 메뉴를 고른다.

 

아까 땡겼던 치킨이

지금은 생각조차 나지 않을 때가 있다.

 

고로, 치킨이 아니다.

 

 

 

 

현재 상황도 매한가지.

 

 

 

 

아까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글감이

지금은 그저 그렇다.

 

'오늘의 메뉴는 이 표현이 아니야'

 

또 읽어보고, 또 수정한다.

 

글을 다시 읽어 보니 치킨이 아니랜다.

수정하고 또 읽어보고 또 수정한다.

 

 

 

 

수정동굴은 예쁘기라도 하지,

수정 숲 속에 아름답게 갇혀버렸다.

 

 

 

 

 

 

'여기가 어디지'

 

 

 

 

 

 

 

 

의식은 이렇게 멈춘다.

 

 

 

 

 

 

 

 

 

통증


 

 

 

 

나는 운동을 싫어한다.

 

 

계기가 있다.

 

 

 

20살 되던 해

 

내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

자발적 헬스크럽을 갔다.

 

 

크럽...방금 나 중년 아저씨 같았다.

 

 

운동을 하면서

기분 좋은 근육통이 오는 반면

기분 나쁜 통증도 있었다.

 

 

같은 고통, 다른 기분.

 

 

후자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알통이 자라는 줄 알았지만

알통증이 심해져 병원을 찾아갔다.

 

 

역시는 역시로 말한다.

 

잘못된 운동법으로

되려 몸이 다치고 있었단다.

 

 

 

 

안 하니만 못하다.

 

 

 

 

 

 

 

 

 

 

 

이러한 퇴고 방식은

모든 여가시간을 앗아갔다.

 

사실 퇴고라고 불릴 자격도 없다.

업무도 이렇게는 안 한다.

개인생활에 지장을 받아가면서 글을 써야 하는가.

 

 

누굴 탓할까

 

내 잘못인 걸

 

 

남들은 쓰다 보면 점점 실력이 늘어난다는데,

나는 time과 day만 늘어난다.

 

 

글쓰기에서 통증이 느껴진다.

 

 

 

기분 나쁜 통증.

 

 

 

 

안 쓰니만 못하다.

 

 

이럴 땐, 어느 병원을 가야 하는 건가

 

 

슬펐다.

 

 

 

 

 

 

하지 말아야 할 생각을 해버렸다.

 

 

 

 

 

 

 

 

'나는 글쓰기에 소질이 없구나..'

 

 

 

 

 

 

 

 

 

 

글쓰기 본성


 

 

 

 

 

 

하나의 부정적인 의식은

다음의 부정적인 생각을 부른다. 

 

 

 

 

168시간 동안 어렵게 채광한 원석이

돌멩이 취급받고 1.68초 만에 버려질 수 있다.

 

 

 

 

 

의욕이 파괴된다.

 

 

 

 

 

뭐가 문제야 대체.

 

 

 

 

글의 문장마다 태클을 거는 완벽주의.

이에 힘입어 포기를 강요하는 포기의식.

다른 날과 다르게 나타나지도 않는 멘탈.

 

 

 

 

침대에 누워버렸다.

 

 

 

 

 

글쓰기 앞에서 처량해진 내가 가엽다.

 

 

 

 

진작에 충혈된 눈을 감아본다.

 

 

흰색 배경 대신

검은색 배경이 보인다.

 

 

생각에 잠긴다.

 

 

 

 

글에는 여러 가지 주제가 있다.

편하고 쉬운 쪽으로 나아가면 되는 걸

나는 굳이 왜 어렵게 갈까

어릴 적부터 항상 다른 길을 걸었다.

 

지난 기억들을 회상하다가

 

지쳤는지, 잠이 들었다.

 

 

 

 

 

 

 

 

글이 느린 이유는

완벽주의가 아닌

 

남을 위한 너의 본성에 있어.

 

 

 

 

 

 

 

 

 

 

어?!

 

 

 

 

 

 

 

 

 

 

 

 

그런 이유라면


 

 

 

 

꿈은 아닌 듯했다.

 

 

 

 

 

복잡한 고민 끝에 돌아온 메아리처럼

 

얕은 잠이 들었을 무렵 들려온 것.

 

 

 

 

마치 본능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방향을 선택한다.

불편함을 익숙하게 만들기 위한 훈련.

친구들은 이런 나에게 변태라고 한다.

 

 

글 쓰지 말고, 나를 쓰라고 했지. 

불순물이 섞이지 않게 정금질을 시작한다.

 

 

 

 

그래 일단 쓰자.

잘 쓰든, 못쓰든 나중이라 했으니까

 

 

 

그렇게 이 블로그에 몇 자국 흔적을 남겼다.

생전 처음 하는 짓이라 걱정도 따랐지만, 

다행히도 감사한 결과들이 나타난다.

 

 

 

 

글자 한글
글재주는 내가 부리고, 감사는 멘탈이 다 받..

 

 

 

 

글에 대한 독자님들의 반응은, 호평이었다.

 

형식적인 칭찬들이 아니었기에 더 기뻤다.

 

 

하지만

스스로 이게 글을 잘 쓴다는 착각으로

번지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들뜬 감정에 속지 않게 철저히 경계한다.

 

 

 

원북이님 감사합니다.

 

 

 

 

 

 

 

 

 

 

 

나의 글쓰기 문제점은

 

글의 속도가 아니라

완벽주의가 아니라

 

 

독자를 위한 배려였다고 ?....

 

 

지금 진심으로 기쁘다...

 

 

그런 이유라면

나의 글쓰기 속도가

달팽이보다 느리다 해도 계속 쓸 것이다.

 

 

새로운 의식을 받았다.

급하게 의자를 떠나 커피를 마시러 가면서

두근 거리는 감정을 진정시켜본다

 

 

 

완벽주의가 아니라 배려 라..

 

근사한 본질이 발견되어 그냥 신이 난다.

 

 

 

갇혀있던 숲은 허상이었다.

 

 

 

한 명이라도 더, 움직이게 된다면

글쓰기 중노동은 언제든 가능하다.

 

이런 행복한 이유라면

궁색한 시간 계산을 할 이유도 사라진다.

 

168시간을 넘어가도 상관없다.

1.68초 만에 버려져도 상관없다.

 

앞으로 완성해 나아가는 글로

한 명이라도 더 움직이는 계기가 된다면 말이다.

 

 

 

 

 

글이 느렸던 반가운 이유가 밝혀졌다.

 

이성적으로 재정리해봤다.

 

전달 과정의 왜곡을 줄이기 위함도 있지만

무엇보다 나의 글을 읽고 누군가

특정 단어와 표현에 마음이 상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부정적인 생각의 꼬리는 끊어지고

흐려졌던 목적의식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눈치 보는 글, 배려하는 글.


 

 

 

 

 

완벽주의가 말하길

 

 

 

남들이 보니까 더 완벽하게 써

 

 

 

이건 나 말고도, 글쓰기가 아니어도

 

각 분야에서

준비과정을 겪는 사람들에게 불어오는

나쁜 바람소리와도 같다.

 

 

 

 

멘탈이 말하길

마음의 온도가 변하는 글이

쩌는 글이라고 했으니까. 아니 좋은 글..

 

방금 나 천박해 보였다.

 

 

독자 마음에 불을 지필 수 있는 글.

그런 글은, 넷플릭스보다 훨씬 재밌다.

 

 

 

 

 

 

 

나의 글을

남의 글과 비교할 필요가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

 

같은 악기에서 다른 소리가 나는 건,

기술의 차이가 아니라

연주자들의 영혼이 각자 다르기 때문이야

 

같은 글쓰기라 해도,

정제된 내면의 투영에 따라 

독자의 마음에 전달되는 온도가 결정되니까

 

 

- 멘탈코디 -

 

 

 

 

 

 

 

 

남을 의식하는 것 배려하는 것은 다르다.

두 영역을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을 때

독자를 위한 균형감각을 갖게 된다.

 

 

 

 

 

 

균형.

 

땅에 선을 따라 걷는 건 빠르지만

공중에 줄 위를 걷는건 느릴 수밖에

 

 

 

 

 

이 감각이 어디 글쓰기에만 해당되겠나

 

 

 

 

 

 

 

 

 

 

벤치 의자 공원 쌍둥이
청멘탈 : "깜빡이 없이 나타나는 너가 더 두려워"

 

 

 


 

 

글을 쓰지 않으면, 나를 쓰지 않는 삶이다.

 

 

- 멘탈코디 -

 


 

 

 

 

 

 

 

 

 

 

보이는 빙산


 

 

 

글을 쓰며 신경 쓰는 부분 중 하나를

가볍게 말해보겠다.

 

 

이 부분도 처음에는

완벽주의에게 복종하는

헛수고로 생각했다.

 

이제는 전혀 바보 같은 생각에 빠질 필요가 없어졌다.

 

상대를 위한 고민이니까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읽기를'

 

독자들의 가독성을 챙기는 이유라면

언제든 시간을 녹이고 고민할 것이다.

 

 

 

 

 

여기서 엔터를 칠까?

 

 

 

여기서

엔터를 칠까?

 

 

 

여기서 엔터를

칠까?

 

 

 

쉼표를 넣고,

엔터를 칠까?

 

 

 

쉼표를 넣지 말고 한 줄에 다 쓸까?

 

 

 

글씨가 작으면 보기 힘들지 않을까

 

 

 

 

글씨체가 이러면 신문지가 되려나

 

 

 

갤럭시는 아이폰 화면보다 좁은데

갑자기 문장이 이

딴 식으로 끊어지면 어떡하지?

 

 

 

컴퓨터로 보는 사람들은

불편해 하진 않을까?

 

 

 

 

이런 고민들은 빙산의 큐티클이다.

큐티클을 모른다면 여친에게

여친이 없다면 구글에게

 

 

글을 쓰는 모든 요소들을 나열하려면

지금부터 한달한 달을 밤 새면 가능하다.

 

 

 

 

창문을 열었다.

 

 

 

 

구름이 참 예쁘다.

 

 

 

헛소리가 나오는 것 보니 둘 중 하나다.

 

 

미쳐가거나

문제가 해결되어 글 완성이 가까워졌거나

 

 

 

 

 

 

 

다이아몬드의 정체


 

 

글 쓰는 고통의 가치는

독자들을 향한 예의와 진심이다.

 

진정성은 내가 아니라

독자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1편에 멘탈 말처럼

 

하트, 구독, 댓글 같은

눈에 보이는 결과에 상관없이

나를 쏟는 과정 자체가 이미 완성

 

글의 완성이 아니라, 나를 쏟음을 완성했다.

 

숱한 과정을 거치고 글 마지막 단락으로 와보니

멘탈이 가져오라고 했던

다이아몬드의 정체를 알아냈다.

 

 

 

다이아몬드는

멋스러운 글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진정성 있는 글도 아니었다.

 

 

 

생각의 방향이 바뀌고

마음의 온도가 변하길 바라는 진심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이 다이아몬드였다.

 

 

 


 

 

 

글 쓰는 행위의 이유와 목적은

내가 아니라, 상대를 향해야 합니다.

 

멘탈코디는 이곳까지 함께해 준

보석 같은 당신 우선주의입니다.

 

 

 

 

 

공원 나무 풀숲 의자
멘탈 : 너, 잘 썼네

 

 

 

 

 

 

사람들의 멘탈을 깨웁니다.

 

 

 

- 멘탈코디 -

 

 

 

 

 

 

 

홀로 싸우며

결과를 만드느라 힘쓰는 사람들에게,

힘과 위로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결국 당신은 해냅니다.

 

 

 


 

이어보면 좋은 글

 

 

열등감 효능, 신기한 경험

열등감 효능 이게 웬 말이냐며 들어왔을 당신에게 열등감 없는 사람은 없다. 열등감이 어디서 어떻게 온 건지는 관심 없다. 대놓고 결론을 말하자면 열등감은 좋은 거다. 칼은 요리사에게 있어

mental-coordinator.tistory.com

 

반응형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